2025년 8월 현재, 글로벌 무역 환경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미국의 상호관세가 실제 적용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의 무역에서도 새로운 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023년 한중 수교 3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2022년 10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1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며, 한중 경제 관계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 경제권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미 무역 마찰과 한중 무역 마찰 중 어떤 쪽이 한국에 더 위험할까? 각 무역 갈등의 성격과 영향을 분석해 보고, 투자자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살펴보자.
한미 무역 마찰: 수출 산업 구조 전반에 부담
미국은 2025년 8월 7일부터 한국에 15% 상호관세를 실제 적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25%에서 협상을 통해 인하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부담이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들이 관세 대상에 포함되면서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무역 정책은 예측 가능한 측면이 있다. 관세율이 명시되고, 협상을 통한 조정 여지도 존재한다. 실제로 한국은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김정관 산업부 장관을 파견해 25%에서 15%로 관세율을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제도적 틀 안에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미국이 요구하는 현지화 투자다. 현대차는 미국 내 생산 비중을 2025년 말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고,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공장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투자는 중장기적인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미국 시장에서의 안정적 지위 확보라는 장점도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한미 무역 마찰은 산업 전반에 구조적 영향을 주지만 대응 방향이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 현지화 능력이 있는 기업, 프리미엄 시장에서 가격 전가가 가능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한중 무역 마찰: 공급망 의존도와 외교 리스크가 변수
중국과의 무역은 더 복잡하다. 2023년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18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은 단순한 경기 변동을 넘어서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가장 큰 요인은 글로벌 ICT 경기 악화였는데, 대중 수출 감소분 중 64%가 IT 품목 수출 부진에 의한 것이었고, 그중 반도체가 51.5%를 차지했다. 더 주목할 점은 중국의 산업 구조 변화다. 반도체 흑자폭이 92억 달러 감소했고, 동제품과 합성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전기차 관련 품목의 수입은 급증했다. 중국산 테슬라 수입이 전년 대비 255.6% 증가했고, 전기차용 배터리 수입도 80.7% 늘었다. 이는 중국이 한국의 '고객'에서 '경쟁자'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한국이 중간재를 공급하고 중국이 조립해서 완제품을 만드는 구조에서, 이제 중국이 직접 완제품까지 생산해서 한국에 수출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외교적 변수도 크다.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적 보복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최근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반응도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 중국의 비관세 장벽, 규제 강화, 소비자 불매운동 등은 예측하기 어렵고 즉각적인 타격을 준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 구조적 리스크의 차이
한미 무역 마찰과 한중 무역 마찰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미 갈등은 '조건부 협력'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은 한국에 현지화를 요구하지만, 그 조건을 충족하면 안정적인 시장 지위를 보장해 준다. 관세도 협상을 통해 조정이 가능하고, IRA나 CHIPS법 같은 지원 정책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예측 가능하고 제도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중 갈등은 '구조적 경쟁'의 성격이 강하다. 중국이 산업 고도화를 통해 한국과 직접 경쟁하게 되면서,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외교적 변수까지 더해지면 예측하기 어려운 급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한중 마찰이 더 위험하다. 외교 이슈나 소비자 심리 변화에 따라 갑작스럽게 시장이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한미 마찰이 더 근본적인 도전이다.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 대대적인 투자와 전략 변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투자자 관점에서 봐야 할 포인트들이 다르다. 한미 갈등에서는 현지화 능력과 기술력이 중요하고, 한중 갈등에서는 대체 시장 확보와 외교 리스크 대응 능력이 중요하다.
결론
한미 무역 마찰과 한중 무역 마찰은 모두 한국 경제에 중대한 도전이지만, 대응 방식은 달라야 한다. 미국과의 갈등은 제도적 협상과 현지화 투자를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 실제로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춘 것도 이런 접근의 성과다. 중국과의 갈등은 더 복잡하다. 2023년 대중 무역수지 적자 전환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한국의 고객에서 경쟁자로 변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사업 모델이 필요하다. 투자자는 이 두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서는 현지화 능력이 뛰어난 기업, 중국 시장에서는 외교 변수에 덜 민감한 사업 구조를 가진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결국 두 거대 경제권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유연성과 다변화가 핵심이다. 한쪽에 올인하기보다는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각각의 특성에 맞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