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터널 애니멀스》는 2016년 11월에 개봉한 톰 포드 감독의 심리 스릴러 영화로, 제73회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도 시청 가능한 이 작품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서 감정의 깊이와 관계의 상처를 예술적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어스틴 라이트의 장편 소설 《토니와 수잔》을 원작으로 삼았으며, 겉보기에는 전 남편으로부터 소설 원고를 받은 여주인공의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복수의 정교함과 감정적 응징을 무겁고 상징적으로 다룬다. 특히 이 영화의 결말은 말 없는 복수의 완성체로서 수많은 해석을 낳으며 잊히지 않는 강렬함을 남긴다.
줄거리 요약: 현실과 픽션이 교차하는 심리극
주인공 수잔(에이미 아담스)은 성공한 갤러리 디렉터로, 겉보기에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내면은 공허하다. 화려한 저택과 부유한 남편, 그리고 미술계에서의 성공까지 모든 것을 갖췄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날, 그녀는 최근 몇 년간 연락도 없었던 전 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로부터 원고 한 부를 받는다. 원고의 제목은 바로 "녹터널 애니멀스" — 야행성 동물이라는 뜻으로, 과거 에드워드가 불면증에 시달리는 수잔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소설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한 가족이 텍사스 고속도로에서 납치되고, 가장인 남성이 무력하게 가족을 잃은 후 복수를 시도하는 잔혹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잔은 이 소설을 읽으며 점점 깊이 빠져들고, 에드워드와 사랑을 속삭였던 가장 은밀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영화는 현실과 소설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에드워드가 소설을 통해 수잔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을 느낀 수잔은 혼란에 빠지고, 영화는 그녀가 소설을 읽는 시간과 감정의 변화를 정교하게 따라간다.
톰 포드 감독은 온갖 럭셔리 브랜드의 의상과 소품들, 그리고 제프 쿤스부터 데미안 허스트까지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등장시켜 시각적 풍요로움을 더한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은 오히려 수잔의 내적 공허함을 더욱 부각하는 대조적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의 미장센 하나하나가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정교한 설계로 이루어져 있다.
감정의 재구성: 인물 심리와 메타포 해석
《녹터널 애니멀스》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내러티브로 구성된다. 하나는 현재의 수잔이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선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 속 남자 '토니(에드워드의 분신)'가 복수를 수행해 가는 이야기다. 수잔은 과거 에드워드의 섬세한 부분에 반했지만, 결국 그것이 나약해 보여서 그를 떠났고, 소설을 통해 일종의 복수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소설 속 토니가 겪는 고통은 단지 픽션이 아니라, 수잔이 에드워드에게 안긴 감정적 학대의 은유다. 그녀가 낙태를 하고, 그의 원고를 조롱하며 떠난 기억은, 토니가 가족을 잃고 복수마저 비극적으로 마무리하는 서사에 녹아 있다. 이 영화는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보다, '누가 누구를 감정적으로 죽였는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화 속 색상 상징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에 에드워드가 쓴 소설을 읽고 악평을 하며 글 쓰는데 재주 없다고 큰 상처를 준 수잔이 누워서 읽었던 소파색깔이 빨간색이었고, 그래서 이 색깔이 그의 상처로 각인되어 영화 속 소설에서 토니 딸과 아내가 시체로 발견된 소파색도 빨간색, 수잔이 일하는 사무실 색깔도 빨간색으로 등장한다. 이는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수잔을 상징하는 시각적 장치다.
각 인물의 심리 묘사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표정·미술·색감·음향을 통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톰 포드 감독의 전공인 패션과 시각적 감각이 캐릭터의 내면과 맞물려 영화 전체에 깊은 미감을 부여한다. 특히 네 주연 배우들의 눈이 가진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화면에 담아낸 푸른빛의 아름다움은 영화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말 해석: 복수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사 한마디 없이 모든 걸 말한다. 수잘은 에드워드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하고, 그는 이를 수락한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혼자 앉아 오래 기다리다,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본다. 그 장면은 바로 '에드워드의 완벽한 복수'다. 애초부터 에드워드라는 인물은 책을 헌정한 누군가이거나, 수잔의 과거에만 등장하거나 소설 속 아버지로서만 등장한다. 수잔이 살아가는 '지금'이라는 순간에는 그의 얼굴이 내비쳐진 적이 없다.
마지막 장면도 처음부터 에드워드는 약속장소에 나올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복수를 위해 소설을 보낸 그가 다시 그녀를 만날 리가 없다. 결말은 해석의 여지가 크지만, 본질은 분명하다. 복수는 때때로 폭력보다 더 무겁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에드워드는 소설로 수잔을 괴롭게 했고, 끝내 아무 말없이 사라짐으로써 그녀의 내면을 무너뜨렸다.
수잔에게 자신이 느낀 고통과 상처를 고스란히 생생한 문체로 전하고, 그 과정 속에서 수잔이 되돌아봤을 과거와 잠 못 드는 나날들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지나치게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복수를 이룬 것이었다. 이 장면은 관계의 끝이란 반드시 누군가가 먼저 말하거나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끝났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장 잔인한 복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결론: 감정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명작
《녹터널 애니멀스》는 복수극이 아니라 감정극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문장, 상징, 색감, 침묵으로 표현된다. 톰 포드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내리는 결정들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교훈을 담은 영화다. 버리는 것에 익숙하며 인간관계 또한 쉽게 버릴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작품은 충성심, 헌신,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2025년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당시 보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더 크게 와닿을 것이다. 누군가를 떠났을 때, 그 사람의 고통이 어디까지였는지를 끝내 몰랐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그 잔혹한 결과를 아름답고도 날카롭게 보여준다. 수잔은 스토리가 소설 속 주인공과 그녀 자신에게 내려질 심판을 이야기할수록 점점 더 이 책을 스스로에 대한 재평가를 강요하는 복수극으로 해석하고, 자신이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했던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결말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진정한 복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선택을 평생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며, 《녹터널 애니멀스》는 바로 그런 완벽한 복수의 완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