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키워낸 제프 베이조스가 2021년 7월 CEO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은퇴를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베이조스는 오히려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블루 오리진을 통한 우주 개발, 워싱턴 포스트를 통한 미디어 혁신, 베이조스 어스 펀드를 통한 기후 대응까지.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분야 같지만, 사실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장기적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영역들이다. 베이조스는 지금 인류 문명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마존 이후의 1순위: 블루오리진과 우주 산업
제프 베이조스가 2000년에 블루오리진을 세웠을 때는 정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로켓을 터뜨리며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할 때도 블루오리진은 텍사스 사막에서 조용히 테스트만 반복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2024년 블루오리진은 NASA의 아르테미스 달 착륙선 계약을 34억 달러에 따냈다. 이건 단순한 우주 관광이 아니라 인류의 달 재착륙이라는 역사적 프로젝트다. 여기에 아마존의 위성 인터넷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카이퍼'를 위한 발사체도 블루오리진이 담당하게 됐다. 한 번에 3,236개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대규모 계획이다.
베이조스의 우주 철학은 다른 억만장자들과 확실히 다르다. "지구는 주거용으로, 중공업은 우주로"라는 그의 말처럼, 단순한 우주관광이나 화성 이주가 목표가 아니다. 지구 자원 고갈 문제를 우주 제조업으로 해결하겠다는 거다. 실제로 블루오리진은 달 표면에서 산소와 연료를 추출하는 기술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의 투자 방식이다. 매년 10억 달러씩 꾸준히 투입하면서도 당장의 수익을 재촉하지 않는다. 아마존을 20년간 적자로 운영하며 키운 것처럼, 블루오리진도 같은 장기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베이조스에게 우주 사업은 그냥 또 다른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는 지구가 100억 명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미래를 대비해 지금부터 우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인수와 정보 권력에 대한 확장
2013년 베이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2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전자상거래 사업가가 왜 갑자기 신문사를 샀을까?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이 결정이 얼마나 전략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 인수 후 편집진의 독립성은 철저히 보장했다. 대신 그가 집중한 건 기술 인프라였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 기술을 활용해 웹사이트 속도를 개선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맞춤형 콘텐츠 추천 시스템을 도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12년 50만 명이던 디지털 구독자가 2023년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더 흥미로운 건 '베이조스가 언론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다. 그는 "독자가 원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정확성"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AI를 활용한 뉴스 생산과 유통에도 투자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AI 기자 '헬리오그래프'를 운영하며 스포츠 경기 결과, 선거 개표 상황 같은 데이터 기반 기사를 자동으로 생성한다.
베이조스의 미디어 전략은 결국 아마존과 동일하다. 고객(독자) 중심 사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장기적 투자다. 그는 정보 생산뿐 아니라 정보 유통의 주도권을 점점 더 확보해 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언론사 하나를 소유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정보가 권력인 시대에 그는 정보 생태계 자체를 재설계하고 있는 거다.
기후 변화, 투자, 그리고 오래 사는 기술
베이조스가 2020년에 발표한 '베이조스 어스 펀드'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다. 이건 단순한 기부나 이미지 관리용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는 여기서도 '시스템 전체를 바꾸기'를 목표로 삼는다.
지금까지 펀드를 통해 투자한 곳들을 보면 베이조스의 접근법이 보인다. 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는 '클라임웍스'에 1억 달러, 전기 배터리 기술의 '레드우드 머티리얼스'에 7억 달러, 그리고 아프리카 농업 기후 적응 프로그램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단순히 재생에너지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기후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다루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거다.
더 흥미로운 건 그의 개인 투자 방향이다. 베이조스는 노화 연구 회사인 '알토스 랩스'에 3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세포 재프로그래밍 기술을 통해 노화 과정을 되돌리려는 연구를 진행한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그 기술을 상용화하려는 거다.
베이조스는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그의 투자 패턴을 보면 명확한 철학이 있다. 지구 환경은 보전하고, 인간 수명은 연장하고, 우주로는 확장한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건 '지속 가능한 문명'이다. 그리고 그 문명에서 인간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본다. 이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큰 그림인 셈이다.
결론
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미래의 인프라'를 설계하고 있다. 우주 산업을 통한 인류 확장, 미디어를 통한 정보 생태계 혁신, 기후 기술과 생명 연장 기술을 통한 지속 가능한 문명 구축. 겉보기엔 서로 다른 분야 같지만 모두 하나의 비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단순히 돈 많은 투자자가 아니다. 50년, 100년 후 인류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먼저 그려놓고, 그 미래를 만들기 위한 기술과 시스템을 지금부터 준비하는 사람이다. 아마존에서 보여준 장기적 사고와 인내심을 이제 인류 전체를 위한 프로젝트에 쏟고 있는 거다. 그의 판단과 투자의 결과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