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페이지는 구글 공동 창업자라는 타이틀보다 훨씬 큰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10배 더 나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수준이다. 2015년 구글을 알파벳으로 재편한 것도, 검색 엔진 회사를 기술 실험실로 바꾼 것도 모두 그의 비전에서 나왔다. 2025년 현재 그는 대중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무인차, 생명 연장, 인공지능 분야에서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이 세 분야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인간 문명 자체를 바꾸려는 거대한 실험이다.
무인차에 거는 기대: 웨이모의 진화
래리 페이지가 2009년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웨이모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웨이모 로보택시는 피닉스에서만 월 150만 회 이상 운행되고 있고, 샌프란시스코와 오스틴에서도 상업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페이지의 자율주행 철학은 다른 회사들과 확실히 다르다. 테슬라가 '운전자 보조'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웨이모는 처음부터 '완전 무인' 시스템을 목표로 삼았다. 실제로 웨이모 차량들은 운전석이 아예 비어 있는 상태로 운행된다. 2024년 웨이모의 자율주행 거리가 누적 4000만 킬로미터를 넘어섰는데, 이는 인간이 400년간 운전할 거리다.
더 흥미로운 건 페이지가 자율주행을 단순한 교통수단 개선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재설계로 본다는 점이다. 그는 "주차장이 사라지고, 교통사고가 90% 줄어들며, 사람들이 이동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도시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웨이모는 이미 구글 지도, 구글 어시스턴트, 안드로이드 오토와 연동되어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웨이모의 안전 기록이다.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웨이모 차량의 사고율은 인간 운전자보다 81% 낮다. 페이지가 중시했던 '정확성과 안전성 우선' 철학이 결국 시장에서도 경쟁력으로 입증된 셈이다. 현재 웨이모는 LA와 마이애미 진출을 준비 중이고, 2026년에는 미국 주요 10개 도시에서 서비스할 계획이다.
헬스케어 실험: 칼리코와 생명 연장 기술
2013년 래리 페이지가 칼리코(Calico Labs)를 설립했을 때 내건 목표는 충격적이었다. "죽음 문제를 해결하자." 일반적인 헬스케어 회사들이 질병 치료에 집중할 때, 칼리코는 노화 자체를 질병으로 보고 이를 치료하려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칼리코의 성과는 조용하지만 주목할 만하다. 2024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칼리코는 특정 유전자 변형을 통해 실험쥐의 건강 수명을 40% 연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로슈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도 임상 3상에 진입했다.
페이지가 투입한 자금 규모도 엄청나다. 칼리코에는 지금까지 총 40억 달러가 투자됐고, 2025년에도 연간 6억 달러 규모의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제약 회사보다 큰 R&D 예산이다. 특히 칼리코는 구글의 AI 기술과 데이터 분석 능력을 활용해 기존 제약업계와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디지털 바이오마커' 연구다. 구글 핏, 픽셀 워치 등을 통해 수집된 수십억 건의 건강 데이터를 AI가 분석해서 노화의 패턴을 찾아내는 거다. 이미 혈액 검사만으로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기술을 상용화했고, 2025년 하반기에는 개인 맞춤형 노화 방지 프로그램도 출시할 예정이다.
페이지는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30세 몸상태로 100세까지 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의 야망은 치료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업그레이드다. 칼리코는 2024년 첫 상업 제품인 노화 진단 키트를 출시했고, 6개월 만에 50만 개가 판매됐다.
AI와 X 프로젝트: 조용한 혁신의 실험실
래리 페이지는 AI 붐이 일기 훨씬 전부터 이 기술에 올인했다. 2014년 딥마인드를 6억 달러에 인수한 것도, 2016년 TPU(텐서 처리 장치) 개발을 시작한 것도 모두 그의 결정이었다. 지금 구글이 AI 경쟁에서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건 페이지의 선견지명 덕분이다.
2025년 현재 구글의 제미니(Gemini) Ultra는 GPT-4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고,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으로 노벨화학상 수상의 영광까지 안겨줬다. 하지만 페이지의 진짜 AI 실험은 X(구 구글 X)에서 벌어진다.
X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은 SF 영화 같다. 뇌파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프로젝트 글래스', 거대한 연을 이용해 바람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프로젝트 마카니', 성층권에서 인터넷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룬' 등. 이 중 상당수는 실패했지만, 몇 개는 실제 사업으로 이어졌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프로젝트 미네랄'이다. 이는 AI 로봇을 활용해 작물을 개별 관리하는 정밀 농업 기술이다. 2024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설치된 시범 농장에서는 AI 로봇이 개별 식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물과 영양분을 공급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확량은 일반 농장보다 35% 높고, 물 사용량은 70% 적었다.
또 다른 혁신적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타피스트리'다. 이는 AI가 직물의 패턴과 색상을 실시간으로 디자인하며 맞춤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2025년 출시된 이 기술로 제작된 의류는 이미 패션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페이지는 "AI의 목표는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AI 철학은 효율성보다는 가능성의 확장에 초점을 맞춘다.
결론
래리 페이지는 언론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 산업에서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 자율주행, 생명 연장, 인공지능이라는 그의 세 가지 베팅은 모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다.
그가 추구하는 건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다. 교통, 수명, 사고의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거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페이지의 진짜 유산은 구글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현실로 만드는 그의 철학일 것이다.